나를 울고 웃겼던 너, 결국 나였다

가끔 세상의 중심이 나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나라는 존재의 평범성을 인정해가는 정도와 비례한다던데 그 이야기에 점점 공감해가게 된다. 확실히 지금보다 어렸던 시절엔 내가 세상의 중심이라는 생각이 육체와 정신을 지배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귀엽기도 하고 그런 패기가 그립기도 한데 누군가는 전두엽이 덜 자라서 그랬던 거라며 갬성 없이 이성적으로 진단해 주기도 하더라. 이과 밉다. 갬성 없는 짜식들. 

내가 세상의 중심이라는 인식이 가져다 준 폐혜 중 한 가지는 주변인들을 무용적 존재로 인식하는 경우가 발생한다는 것이었다. 세상의 중심이 나라는 생각으로도 모자라 주변인들을 별 쓸모 없는 존재라고 생각하다니. 병이 꽤 심각했다. 이 말인 즉슨 나의 삶은 ‘세상의 중심은 나요=너희는 모두 쓸모 없어!=내가 짱, 나만 짱’이라는 한심하기 짝이 없는 자의식 과잉의 뫼비우스의 띠가 형성되었고 그것은 자연스레 남들의 미움을 받기 딱 좋은, 외로운 인생의 구렁텅이로 스스로를 몰아 가는 불쌍한 꼴을 만들기에 충분했다. 점점 병이 심해지던 딱 그 시기쯤 나의 해외 생활이 시작되었다. 다행스럽게도 외로운 인생의 구렁텅이로 빠져들어가기 두 발자국 정도만을 남겨놓았을 때. 

한국어는 그들이 못했고, 현지어는 내가 못했고, 영어는 나도 못하고 그들도 못했다. 뭣 모르고 혼자 시장에 갔다가 300원짜리 쌀국수 사리를 10,000원이나 주고 사고서 바가지 쓰기 싫어 시장 출입을 끊었던 나. 장염 걸렸다는 말을 못해 현지 의사 선생님을 데리고 화장실을 들락날락 거리는 시뮬레이션을 몸소 선보였던 나. 헬멧 없이 오토바이 타던 나를 단속한 경찰에게 순수하게 과태료 200,000원을 주었던 나(알고보니 20,000원 짜리였다), 택시비 5,000원짜리 거리를 매일 같이 3개월 동안 15,000원씩 내며 다녔던 나(즉으브르 브그즈…….), 고수 빼달라는 말을 못해 고수가 잔뜩 들어간 어죽을 우웩거리며 위장으로 밀어 넣었던 나. 그런 글로벌 호구로 살았던 나. 현지 생활 3개월만에 천상천하 유아독존에서 글로벌 호구로 전락한 스스로가 가엽고 한심하기 그지 없었다. 

 

 

이런저런 에피소드를 만들어내며 조금씩 현지에 적응해 나갔고 그 곳에서 만났던 친구들은 내가 택시에 놓고 내린 핸드폰과 지갑을 찾아주고, 일을 도와줬으며 동화 속에만 있다는 싸고 좋은 집까지 구해주었다. 저녁이면 함께 운동하고 맥주를 마셨고, 시간이 나면 봉사활동도 함께 하고 여기저기 놀러다니며 나의 해외 생활을 풍요롭게 만들어 주었다. 수다로 스트레스를 푸는 나에게 있어 그들은 최소한 언제든지 연락해서 만나 떠들 수 있는 사람들이 되어주었다. 세상의 중심은 무슨 스스로가 미천한 존재임을 자각하게 만들어주었던 친구들이 참 고맙다. 그립고 자주 생각난다. 

나는 세상의 중심이 아니라는, 세상은 혼자 살아갈 수 없다는 나라는 존재의 미약함, 공기처럼 늘 옆에 있어 소중함을 몰랐던 나의 주변, 고생고생을 겪고 나서야 그들의 존재를 깨달았던 나의 그 시절. 다른 환경에 적응하며 익숙했던 일상이 새삼 그립다. 그 일상은 나 혼자가 아닌 그들과 함께 채웠던 일상이었다. 

우리에겐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나의 주변을 형성하는데, 크게 타인이라는 카테고리로 나의 주변을 뭉뚱그려 생각해보면 타인이라는 그들은 늘 나의 주변 같은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그들은 늘 같은 상태로 존재하는데 그것을 이리 보고 저리 보고 혼자 바빴던 것은 나였다. 눈 감고 코끼리를 만지듯 그들을 그때그때 더듬어 보기만 했고 진심으로 이해하려 노력하지 않았던 삶이었다. 소중함을 몰랐으니 그들을 알아가려 노력하지도 않았고 고마움을 표현하는 마음도 부족했던 삶이었다. 평소에는 공기의 소중함을 모르지만 미세먼지 경보가 새빨갛게 울리면 맑은 공기를 되찾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 가끔 내 스스로가 외롭고 타인으로부터 고마움이 느껴지지 않을 때면, 익숙치 않은 환경으로 나를 옮겨놔 보는 건 어떨까.

 

- 오의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