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서부터 우리 집은 가난했었고

한국을 떠나기 전까지 내가 태어나고 자라고 성장한 곳은 서울의 한 변두리이다. 서울이라는 울타리 안에 속해있는 곳이기는 하지만 1988년 올림픽 당시 많은 철거민이 발생했던 곳이기도 하고, 서울시청보다는 의정부시청이나 구리시청이 가까운 곳이라서 늘 서울의 문지방을 아슬아슬하게 밟고 있는 곳이었다. 가정형편도 넉넉했던 편이 아니었기 때문에 유년 시절 풍족한 기억 같은 건 딱히 없다. 그래도 IMF가 막 터지기 전인 1996년 무렵, 집 앞에 새로 생긴 아이스크림 가게는 잊을 수가 없다.

 

여러 가지 맛의 아이스크림 중 하나를 골라서 고급스러운 콘 위에 올려서 먹는 것은 똑같았지만 그 유명한 서른한 가지 맛의 가게는 아니었다. 지금으로서는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가게지만 그래도 아이스크림 하나가 1,700원이었던 것만큼은 또렷하게 기억난다. 당시 어린 나는 도대체 우리 동네에서 저런 아이스크림을 저 돈을 내면서까지 사 먹을 사람이 몇 명이나 될지 진심으로 아이스크림 가게 사장님을 걱정하였다. (가난이란 이런 것이다, 갓 초등학교를 졸업하는 어린아이가 주제넘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것.)

 

하루는 가족들과 함께 집에서 저녁을 먹고 동네 산책을 하는데 무슨 생각이었는지 나는 아빠에게 그 아이스크림을 사달라고 말했다. 아마도 이제 슬슬 부모님과의 시간이 어색해지기 시작하는 나이의 남자아이가 던진 아무 말이었을 텐데 아빠는 흔쾌히 그러자면서 아이스크림을 사주셨다. 나는 이 비싼 아이스크림을 아무 말 없이 사주는 아빠가 고마우면서도 무서웠다. 그때 아빠는 무슨 생각이었을까? 조용히 그 아이스크림을 우걱우걱 씹어 드시는 아버지는 아이스크림이 싫다고 하지 않으셨어, 아버지는 아이스크림이 싫다고 하지 않으셨어…

 

이날의 추억이 다시금 떠오른 건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그리고 개발 현장에서 일하기 시작할 때부터였다. 소득증대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까닭에 사업 참여자 가정에 방문해서 소득 실태를 조사할 때가 많은데, 처음 현장에서 혼란스러울 때가 많았다. 분명히 빈곤계층이라고 하는데 왜 아이폰을 갖고 있지? 나도 없는 스마트 TV가 왜 이 집에 있지? 저 오토바이는 도대체 얼마쯤 하는 거지? 당장 저거만 팔아도 우리 사업에 참여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 아니 애초에 저거 살 돈이 있었으면 교육비나 의료비에 보태는 게 맞지 않나? 이런 오만한 생각으로 사업 참여자들을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바라보던 시절이 있었다.

 

가난하다고 욕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더구나 현대 사회는 욕망으로 점철된 자본주의 사회 아닌가? 이런 사회에서 빈곤의 이유로 무언가를 욕망하지 못한다는 것은 유린에 가까운 처사다. 먹는 것, 자는 것, 아픈 것까지 포기해가면서 아이폰을 가진 것일 수도 있고, 힘겹게 얻은 스마트티비로 뿌듯함을 느끼며 삶의 고단함을 잊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저 은전 한 닢 갖기 위해서 애를 썼던 사람의 이야기처럼 우리는 누군가의 욕망을, 그리고 그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노력한 시간을 멋대로 재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빈곤의 형태는 무언가를 갖지 못한 것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다. 아빠 역시 집 앞에 새로 생긴 아이스크림 가게가 내심 궁금했을 것이다. 그게 잘못은 아니지 않은가?

 

 

- 조용석 (국제개발새발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