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말을 정말 잘하시네요!”

나는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라고 말을 하면 그게 뭐냐고 묻는 사람들이 더러 있을 만큼 예술 특화된 전공이다. 문학을 공부한다는 점에서 국어국문과와 혼동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문예창작과에서는 글쓰기를 전문적으로 배운다. 세부 전공이 소설이었다면 사업 계획서나 결과 보고서를 쓸 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을 텐데 하필이면 시 전공이라서 지금 하는 일에 해당 전공을 어떻게 접목해야 할지 늘 고민하는 동시에 전문성이 반드시 대학 전공을 통해서만 길러지는 것은 아니지 않나 생각하기도 한다.

 

특히 시를 공부한다는 점에서 우리나라 언어가 가진 예민한 특성을 섬세하게 다루는 연습을 오래동안 해왔는데, 막상 졸업 이후 개발 현장에 와서 외국어로 일을 하다 보니 우리나라 말이 얼마나 모호한 언어인지 새삼 깨닫게 되었다. 의미의 다중성, 단어의 뉘앙스, 알타이어족 문장 구조, 표현의 완곡함, 서술의 애매함 등 시를 공부할 때에는 우주 바깥의 세계를 그려낼 수 있었던 찬란한 특성들이 정작 번역을 거치는 동안 언어의 부정확함으로 치환되는 경우가 많았다. 더욱이 언어는 생각을 지배하고 사회를 규정한다는 점에서 한국어가 지닌 모호함은 결국 한국인의 특성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외국어로 번역하기 불가능한 말 중 하나는 바로 ‘눈치’이다. 지각 능력, 처신, 주변 의식, 단서, 배려심. 눈치와 비슷한 의미의 단어들은 더러 있지만, 그 무엇도 한국인이라면 모두가 아는 ‘눈치’를 정확하게 집어내지는 못한다. 눈치는 결국 상대방의 기분을 읽고 파악해야 하는 능력인데, 이 ‘기분’이라는 것도 눈치와 마찬가지로 느낌, 감정 등으로는 표현할 수는 없는 단어다. 나는 이 ‘한국인의 기분(K-IBUN)’이야 말로 한국 문화를 대표하는, 가장 한국스러운 단어이자 현상이라고 본다. 직관적인 의사소통 방식이 아닌, 상대방의 의도를 묻지 않고 먼저 이해한 뒤 그 사람의 감정이 상하지 않도록 정제된 언어를 사용해야 하지만 나보다 어린 사람이거나 직급이 낮은 사람에게는 비교적 덜 신경 써도 되는 그런 기분과 눈치. 하지만 이런 게 개발 현장에서 통용될 리는 없다.

 

개발현장에서 외국어로 일을 하는 데에 있어서 가장 큰 어려움은 외국어를 못하기 때문이 아니라 이러한 기분(K-IBUN)의 구조 속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안녕하세요~! 올리버쌤입니따아→” 하고 인사하는 한 유튜버의 영상에는 결국 문화가 다르고 외국어로 번역하기 불가능한 표현들 때문에 겪는 어려움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한국에서는 적당히 적당히 말해도 알아들었는데 해외 현장에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단계적으로 설명을 해야 하고 업무를 수행하는 방식도 명확해야한다. 이것은 내가 외국어를 못해서도 아니고 상대방의 생각이 짧아서도 아니다. ‘개떡 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기’를 바라는 K-IBUN의 문화에서 자란 우리이기 때문에 현장에서만큼은 보다 정확하고 분명하게 외국 사람들과 이야기해야 한다. 더구나 공여국, 수원국이라는 관계 속에서 쉽사리 발생할 수 있는 불평등한 권력 구조 속에서 “왜 일을 이런 식으로 처리하냐?”, “말귀를 왜 못 알아듣냐?”, “이거 하는 김에 이것도 좀 같이 면 안 되냐?”와 같은 생각은 개발 현장은 물론 한국 사회에서도 사라져야 하는 아름다운 한국의 미풍양속이 아닌가 생각한다.

 

몇 년 전, 지난 정권의 입맛대로 수립된 ‘코리아에이드(K-Aid)’는 한국 개발 협력 사업의 부끄러운 오점으로 남으며 많은 비판을 받았다. 높은 곳에 계시는 분들이 만들라고 해서 진짜 만든 것도 결국 그분들의 K-IBUN을 맞추기 때문이 아닌가 싶은데, 그렇다면 역시 K-Aid보다 해로운 건 K-IBUN이지 않을까.

 

 

- 조용석 (국제개발새발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