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예쓰! 라고 할 때 홀로 예!?!? 하는 사람

나는 종교가 없다. 이런 나를 잠재적 신자라고 표현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버트런드 러셀(영국의 수학자이자 철학자, 대표 저서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과 크리스토퍼 히친스(미국의 언론인이자 평론가, 대표 저서 『신은 위대하지 않다』)의 책을 읽으며 성장한 나에게 변절의 마음을 품기란 쉽지가 않다. 종교는 개인의 신념이자 선택의 결과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내가 종교를 가지지 않는 것만큼이나 남들이 종교를 가지는 것에 대해서 특별히 말할 것은 없다, 단순히 종교를 가지고 있는가 없는가에 대해서만 논하자면 말이다.

 

하지만 이것이 국제 개발 협력업계 취직에 있어서 걸림돌이 될 줄은 몰랐다. 사실 이건 꼭 집어 국제 개발 협력업계만의 일은 아니다. 대다수의 많은 비영리기관이 종교를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사회안전망 구축 측면에서 본다면 국가가 본연의 역할을 종교기관 혹은 종교를 기반으로 하는 비영리기관에 사회 서비스를 떠맡기고 있는 구조인 셈이다. 그리고 그 흐름이 국내 개발협력 비영리기관으로도 전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런 결과 속에서 종교가 없는 사람이 종교 기반 비영리기관에 들어가기는 쉽지 않고 설령 들어갔다고 하여도 버티는 것도 힘든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의 첫 직장은 지옥이었다. 종교가 없는 까닭에 천국도 지옥도 믿지 않던 나였는데, 어쩌면 지옥이 있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게 만든 걸 보면 내가 잠재적 신자가 맞긴 맞나 보다.

 

첫 파견국가는 미얀마였다. 국민의 90%가 불교인 나라. 개발 협력사업을 위해 파견된 나에게는 빈곤 해결이 가장 우선이었지만 기관으로서는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사업참여자를 특정 종교인들로만 구성하라는 업무를 지시받았을 때 사실 크게 놀라지는 않았다. 충분히 예상 가능한 일이었고 지금도 어디선가 이뤄지고 있을 일일 것이다. (해당 기관은 현재 국제 개발 사업을 더는 하지 않는 것으로 보이며, 얼마 전 이사장은 횡령 혐의로 고발당했다.) 당시 고민했던 지점은 인턴의 신분으로 이 지시를 어떻게 소화할 것인가에 대한 부분이었다. 고된 시간 이겨내고 성공한 취직이었고 어렵게 발을 디딘 개발협력 현장이었다. 설령 내가 옳다고 하여도 인턴이 기관의 생각을 관철시킬 수 없었고, 그렇다고 다 때려치우고 다시 취업 준비생으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았다. 그냥 딴생각하지 말고 긍정적으로 예쑤! 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기도하면 된다는 사무국장님 앞에서 나는 예!?!? 라며 머리 위로 물음표만 띄울 뿐이었다.

 

하지만 스스로 위험하다고 느껴질 때는 내가 부정적인 사람이 되어가는 것을 발견하던 순간이었다. 납득할 수 없는 사업에 힘을 쏟고 싶지 않았고 다른 업무 지시를 받아도 괜히 시큰둥해지고 열심히 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매년 이 기관으로 배정되는 숱한 인턴 중의 한 사람일 뿐이고 다 쓰면 바로 교체되는 건전지 같은 존재였다. 어차피 언젠가 해야 하는 일이었고 거스를 수도 없는 일이었지만 최대한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면서 내 손에 묻히지 않으려고 했다. 자연스럽게 매사 부정적으로만 생각하게 되었고 예쓰!는 커녕 예!?!?도 떠올리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부정적인 태도와 비판적인 태도는 한 끗 차이로 결정된다. 어차피 예쓰! 라고 할 수 없는 사람이라면 적어도 예!?!?의 태도는 유지했어야 했다. 주어진 업무를 수동적으로 여기지 않고 한 번 더 반문해보는 비판적인 태도. 선한 의도가 반드시 선한 결과만을 낳지만은 않듯이 비판적으로 사업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거늘, 나는 그 단계를 지나쳐버리고 부정적으로 매사를 바라보았다. 사실 내가 종교가 있었다고 한들 겪는 고통은 비슷했을 것이다. 사업참여자를 특정 종교인으로만 구성하라고 지시하는 기관이 다른 업무에 대해서는 합리적이고 이성적일 리는 없지 않은가. 그리고 고난과 시련이 없는 직장이 세상 어디에 있겠는가? 이건 지금 근무 중인 직장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사랑합니다, 대표님) 비판적인 태도만으로 해결되는 일은 없겠지만 적어도 부정적인 태도는 해결조차 시도하지 않는다. 어차피 국제개발이라는 일이 해결보다는 시도를 하는 일이지 않은가.

 

 

- 조용석 (국제개발새발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