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아는데요?

코로나가 창궐하기 이전의 일이다. 일하는 기관은 달라도 일하는 나라는 같던  활동가들과 함께 바람이라도 쐴 겸 다 함께 바닷가에 놀러 간 적이 있었다. 보고서와 영수증의 파도에만 휩쓸려 지내던 우리에게 짠내음 가득한 동남아시아의 바다는 정말 절경이었고 장관이었고 그야말로 신이 주신 선물이었다.

 

그렇게 행복한 시간을 보내던 우리에게 커다란 카메라를 든 사진 기사가 다가왔다. 언제 어디서나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서 사진을 찍을 수 있는(그래봤자 음식 사진만 찍는) 21세기에 기념 촬영을 해주는 사진 기사라니! 그는 사진 3,000원에 멋진 추억을 만들어주겠다고 하였지만, 셀카봉으로 이미 수천 장의 사진을 찍은 우리의 관심을 끌지는 못 했다. 그래도 그는 물러서지 않고 사지 않아도 괜찮으니까 딱 한 장만 찍어보라고 권하였고 결국 우리는 카메라 앞에서 우스꽝스러운 포즈를 취하는 것으로 그를 떠나보냈다.

 

한참 뒤 근처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는데 그가 다시 나타났다. 그리고 사지 않아도 된다고 했던 그 사진을 곱게 코팅까지 해와서는 혹시 살 생각이 없느냐고 되물었다. 일행 중 몇몇은 상술이라며 사지 말자고 하였지만 이렇게까지 찾아온 그를 그냥 보낼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다. 결국 그 사진은 내 손으로 구매하게 되었고, 계속해서 상술에 당한 거라며 투덜대던 일행에게 결국 한마디 했다.

 

“저도 아는데요?”

 

눈 뜨고 코 베이는 게 현대 사회라고 하지만 우리는 알고도 당할 때가 있다. 아니 오히려 당해야만 할 때도 있다. 특히 개발 협력이라는 일이 그렇지 않나 싶다. 그 촬영기사에게도 스마트폰이 도래하기 이전에 디지털카메라로 관광객의 사진을 찍어주고 하루하루 먹고살던 시절이 있었을 것이고, 디지털카메라가 등장하기 이전에는 필름 카메라로 촬영을 하고 바쁘게 현상을 해서 돈을 벌던 때도 있었을 것이다. 사양 산업이라면 사양 산업이겠지만 애초에 이런 일에 ‘산업’이라는 말이 가당키나 할까. 누구나 가슴에 스마트폰 하나쯤은 있는 관광객들에게 3,000원이라도 벌어보려고 하는 애쓰는 것이 시대의 흐름을 따라잡지 못한 것에 대한 징벌이라도 되는 걸까. 코가 석 자쯤 된다면 한 번쯤은 베여도 상관없지 않을까.

 

합리적 이성을 추구하는 것은 문명사회의 근간이라고 하여도 개인의 삶은 충분히 논리적이지 않을 수 있다. 사회는 개개인의 합리적 선택만으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에 활동가들은 현장에 뛰어들어 사람들을 이해하고 현상을 마주하려고 노력한다. 그 누구도 호구가 되는 것을 자처하고 싶지는 않겠지만 때로는 호구가 나타나야 비로소 게임이 끝나기도 한다. 좋은 것만 골라서 취하는 것만으로는 활동가들이 해외에 나와 있는 이유가 모두 설명되지 않는다. 3,000원이라는 금액이 크지 않았던 탓도 있었겠지만, 알면서도 속아주는 자세가 필요할 때도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내가 그 사진을 구매한 까닭은 내 얼굴이 너무 못 생기게 나와서였지만.

 

 

- 조용석 (국제개발새발활동가)